말쑤 2006. 5. 17. 00:22
삼국무쌍 이후에 방황에 빠져 마구잡이식으로 이 게임 저 게임을 플레이해보다가 만난, 표현 그대로 숨은 보석 같은 게임, 범피트롯. 액션로망이라는 수식어는 게임을 잘 요약해주는 말이긴 하지만 너무 비대중적이랄까, 마케팅적이지 못하달까. 여러모로 게임성에 비해 성공은 물론이거니와 주목과 평가도 아쉬운 케이스다.

따듯한 그래픽의 메카닉, 전투용이 아니라 탈 것으로서의 비클. 메카닉으로서의 흔적은 파츠 조합과 개발 정도랄까. 메카닉이라기보다는 수집욕을 자극하는 요소로 이해해도 괜찮겠다. 액션성이라는 것도 다소 답답한 조작 때문에 상당히 떨어지지만 어디까지나 메카닉이라는 모티브를 따온 어드벤쳐류이기 때문에 게임의 몰입에 지장은 전혀 없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하는 부분은 온라인 게임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압도적 스토리(량). 엔딩을 본 후에 2회차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컨셉도 놀랍다.

큰 그림으로 본다면 GTA류의 겉보기에 자유도가 대단히 높은 퀘스트 중심의 어드벤쳐물이라 보는 것이 맞겠다. 실은 기획자가 촘촘하게 짜놓은 길대로 가는 것이긴 하지만, 다소 귀찮을 정도로 제시되는 선택지에 따라 블랙앤화이트와 같은 선악이 결정되는 구조라던가, 평판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점이라던가, 특히 선택에 따라 크게 두가지의 큰 갈래로 스토리가 나뉘어지는 점 등은, 충분한 자유도를 느끼게 해준다. 악기와 음악을 모티브로 한 미니게임, 당구나 퀴즈 등과 같은 잔재미요소가 다양하다. 온라인에서도 실험적으로 시도된 바 있는 非전투 콘텐츠를 통한 재미 제공이 풍부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놓고 보면 좋은 것 모아놓은 게임일 뿐. 이 모든 요소를 하나로 묶어주고 억지스럽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은 범피트롯이 선사하는 세계관과 스토리이다. 엔딩 후에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탄탄한 세계관 속에 저런 다양한 요소들이 상충하지 않고 녹아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非전투 콘텐츠를 즐겨야하는 의무감이 거의 없는 것이다. 산업화 초기 도시에 등장한 메카닉과 이를 둘러싼 음모와 어드벤쳐라는 익숙하면서 진부하달 수도 있는 스토리이지만 잘 짜여진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새벽 3시.

온라인으로 옮겨온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한참 고민해보았으나 아무래도 그림이 안 그려진다.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온라인게임에 적용하는 버거운 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스토리텔링은 굳이 텔링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것이니깐. 세계관 자체의 차별화가 우선이지만 모든 게임 요소들의 세계관으로의 중앙집권적 구조가 훨씬 중요하다. 그래, 맞다 맞아.

코니를 향한 주인공 (말쑤) 의 애틋한 감정과 반복적인 인터랙티브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사랑의 결실 또한 성취의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 게임이 미리 그려놓은 길이 수긍만 된다면 순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게이머들에게는 일플을 강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