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과잡기/사랑과사람
길고 긴 인생의 슬럼프
말쑤
2007. 9. 10. 03:59
4달만의 포스팅. 원채 업데이트가 없는 블로그이긴 하지만 네 달은 기록인 듯 하다. 웹에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조금 어색할 정도로 긴 시간처럼 느껴진다. 자주, 말쑤전용을 클릭했다가 이내 관뒀던 것 같다. "글쓰기"에 자신감이 없었다. 나를 정리한다거나, 표현한다거나, 어떤 의견을 적어둔다거나, 미래 따위에 대해 계획한다거나, 하는 모든 것들에 자신감이 없었다. 조금만 있다가 하자, 다른게 조금만 더 정리되면 하자라는 식으로 모든 걸 미뤄왔다. 블로깅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살아오는 동안 미루기 신공을 가장 많이 사용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네 달, 어찌보면 살아오며 자주 겪지 못할 굵직한 일들이 참 많았다. 어딘가 정리해두고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 얻고자 발버둥쳤어야 했는데, 예전의 나였다면 그랬어야 했는데, 그저 시간은 지나갔고, 네 달만큼 더 늙었고, 꿈에 그리던 민간인이 되었고, 열망하던 땅도 밟았고, 현실의 참 단단한 벽도 슬쩍 두드려보았고, 그리고 누군가의 가슴 혹은 어딘가에는 너덜너덜 걸레 같은 상처도 남겼고,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아무 계기도 이유도 없이, 네 달만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슬럼프... 그 놈 참 길다. 언젠가 적절한 시점에 끊어지겠거니 생각한 그 놈의 슬럼프, 끝이 보이질 않게 돼버렸다. 이 놈을 극복하기 위해 시도했던 많은 처방들은 이제 복잡하게 얽혀버려서, 그게 처방인지 병인지도 헷갈리게 돼버렸다. 이제 말하기,주장하기,설득하기 등의 행위를 꺼려하는, 깊은 자신감 상실의 단계에 와버렸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에서 어떻게 끊어야할지 좌표를 잃어버렸다. 시즌이 시작할 때마다 부활을 기대하는 소리들이 무색하게 일관되게 무너지는 박찬호처럼, 슬럼프가 아니라 추락임을 고백해야 하는 때가 올까봐 두렵다.
...... 시간을 쪼개어 각 절을 채워나가는 방법으로, 다시 처방을 내어본다. 일단은 내가 응당 충실해야 하는 사람들을 가치로 두고. 다시, 어떤 설레임이라던가 관계에 대한 정성,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구, 비난에 대한 민감함 같은 것들을 얻을 때까지, 가능한 자주 포스팅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