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과잡기/임노동과징병제
게임회사에서 비개발직원으로 살아가기
말쑤
2005. 3. 15. 21:30
게임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 그건 참 멋진 거다. 캐릭터가 움직이고 사람들이 게임에 들어와서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제 자식 같은 기분이 들테다. 흘려온 땀과 눈물이 모두 녹아있는 "작품"이니까.
비개발 인력인 나로썬 그런 주인의식 같은 것 가져볼 수가 없다. 이게 한발자국 떨어져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은근한 마음 고생이 정말 심하다는 걸 요즘에야 느끼고 있다. 내가 팔고 있는 제품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건, 회사 입장에서도 안 될 일이고 개인적으로도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기분 나쁜 것은 개발자들의 오만함이다. 엔지니어라는 것이 원래 그런지는 나는 알 바 아니지만, 너희들이 한 게 뭐 있느냐는 듯한 눈빛과 말투는 요즘들어 부쩍 참기 힘들어졌다. 주인의식은 당신들만 가져야 하는 것이더냐. 나는 우리의 상품을 사랑하지 않는 줄 아느냐. 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래봐야 돌아오는 것은 개싸움뿐일터..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들이 다 이러할진데, 평생 엔지니어의 장인정신 따위 직접 느낄 수는 없을진데, 벌써부터 힘 빠질 건 없다. 자신감을 갖고 부딪히자. 코딩도 모르고 디자인도 모르지만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건 결국 "비개발 인력"이다.
"남 밑에서 일하고 싶니, 남을 부리면서 일하고 싶니"
그래, 다시 상기하자. 내가 선택한 길이다. 두려워하지 말자 그깟 알량한 자존심들. 내 자존심으로 눌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