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쑤 2005. 6. 5. 23:34

노동자의 시민들의 대응은 영웅적이었다. 그들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 놀라운 행동을 취했다. 탱크와 병력 수송 차량이 도시 중심부에 진입하려면 지나야 할 길목마다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그리고 주요 교차로에는 버스와 대형 트럭을 뒤집어놓고 길을 막았다. 함께할 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해 노동자와 학생들은 대자바로 벽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전단을 돌렸으며 자유로운 정치토론에 참가한 시민들을 향해 거리 곳곳에서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자전거 부대와 오토바이 부대가 군대의 동향을 보고하고 시민들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조직되었다. 경찰과 시당국이 사라진 자리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은 공중질서 유지와 교통정리의 책임을 다했다. 그리고 수도의 수많은 시민은 새로운 연대의식과 자립의식을 잠시나마 경험하게 되었다.



어디 유럽이나 광주 이야기가 아니다
떡진 머리와 '굳은 의지' 아이템이 판치는 북경의 이야기다.

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20만의 인민해방군이 외국군처럼 수도를 에워싸고, 학생과 시민들은 분출하는 정치의식에 자발적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질서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 행동은 영웅적인 것일까 아닐까?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는 '지성사' 분야의 학자가 쓴 책인만큼 역사를 평가하는 관점이 경제학(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혁명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대격변은 일반적으로 이루지 못할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꽤 오랜 시간 동안 실제로 이루어진 역사적 성취가 무시되고 잊혀지면서 환멸감과 냉소주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치 및 역사 인식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같은 마오주의 기록에 나타난 오점이다. 이런 역사적 모험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초래했다는 것을 잊을 수는 없으며 잊어서도 안된다. 그러나 미래의 역사가들은 이런 실패와 죄상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인민공화국 역사에서 마오주의 시대를 세계역사상 위대한 근대화를 이룩한 시대의 하나로, 그리고 중국인에게 커더란 사회적인간적 이득을 가져다준 시대로 틀림없이 기록할 것이다.



"사회주의 건설에 실패함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위대한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것이, 결국의 결론인 셈이다. (슬픈 결론이다)

경제학자라면 이렇게 평가했을 법 하다
"마오주의 시대의 온갖 불합리한 제도와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위대한 근대화를 이룩했다"


갑자기 우울해진다.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똑같은 행위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종국에는 관점의 차이가 호불호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