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대학생에게서 민주화나 혁명에 대한 열정을 찾기는 힘들다. 1989년 5월 천안문광장 시위에 참석했던 베이징대학 광화관리학원(경영대학에 해당) 88학번 출신 한 직장인은 “중국 대학생도 80년대 학번과 90년대 이후 학번 세대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확실하게 차이 난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후에 태어나고 성장했던 90년대 학번들은 국가·혁명·민주화에 대한 관심보다 개인적인 문제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국이 1976년부터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하면서 90년대 이후 학번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
1. 자오쯔양 관심없어요
자오쯔양을 온라인을 통해서야 알 정도라는 비비는 톈안먼 사태처럼 “항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며 실제 항의할 게 별로 없다”면서 “항의하게 되면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라 언론에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87년 6월 연세대 정문 앞.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한 학생과 마스크를 쓴 채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학생의 사진. ‘6ㆍ10 항쟁’의 상징이었던 이한열의 한 장의 사진이다. 연세대에서는 이한열 군을 추모하는 행사가 매년 중앙도서관 앞에서 열린다. 그런데 지난해 추모제 행사기간 중 누군가가 이한열 씨의 대형 그림영정을 찢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슷한 현상에 대한 스캐치인 것 같은데,
읽는이의 미묘한 감정은 사뭇 다를게다.
한쪽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아쉬움,
그리고 이쪽엔 고개를 끄덕이는 수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