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로 세입자를 바꿔야겠다는 집주인 김O회씨가 갑자기 원망스러워진다. 두번째니 10% 할인해 35만원만 복비로 받으실 부동산 아저씨의, "아무래도 오피스텔 매매가가 올라가기 시작해서 집이 팔린 것 같다. 그래서 나가라는 것 같다. 세무서 이야기는 거짓말인 것 같다."는 말이 귓머리에 윙윙 울린다.
학교 앞에서 자취할 적을 머리 속에 그렸기 때문이었나, 이사를 너무 쉽게 봤다. 밤이 새도록 짐을 싸고 또 싸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내가 이걸 정말 다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멍하니 앉아서 어지러워진 오피스텔을 쳐다보기를 몇번씩..
1년이라는 시간은 물건이 꽉꽉 담긴 박스들 만큼의 무게가 되어 혼자서 낑낑대봐야 다 들 수 없을만큼 무거워져있다. 홈에버에서 가져온 뽀삐 박스, 못말리는 신짱 박스, 죠리퐁 박스들 속에, 손에 집히는대로 눈에 보이는대로 물건을 넣고 또 넣어도 어디선가 물건이 또 나온다. 머리속에, 1년간 손에 무언가를 들고 집으로 들어서던 모습들이 하나씩 스쳐간다. 이사짐 센타를 미리 구할걸, 옮기는건 둘째 치고 짐을 싸는데만 이렇게 많은 시간과 힘과 정신력이 소모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17평 단칸 오피스텔 안에는 가지수로 헤아릴 수 없을만큼의 물건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물건들은 모두 Root 폴더에 '마지막으로 수정된 시각'으로만 정렬되어 어지러이 쌓여있었다. 공정률이 채 50%가 되었을까, 이제 폴더를 생성한다던가 분류를 시도한다던가 하는 것은 포기했다.
그래, 이건 자취가 아니라 살림이었지. 그래, 이건 치기 어린 기숙사 생활이나 신림동 고시촌 월세방에 잠깐 사는 학생의 공간이 아니라, 진지하고 진중하고 엄숙한, 생활의 공간이었지. 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던걸까. 왜, 바로 옆건물인데 손없는날이라고 30만원은 될거라는 이사 포탈 상담원 말이 말도 안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걸까. 왜 가벼울 거라고, 침대만 어떻게 옮기면 만사 장땡이라고 생각했던걸까. 왜 나는, 이 엄청난 무게를 느끼지 못했던걸까.
20개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인형들, 여기저기서 5판은 나온 펜잘, 뻘짓으로 날려먹은 메인보드들, 이나라 저나라 섞여있는 동전들, 찾을 땐 안나오던 수많은 라이터들, 못이 안 들어가 이 벽 저 벽 많이도 붙여놨던 걸개들.... 13개월의 의미가 비로소 선명해지고, 머리속엔 네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다음번 이사는, 언제 또 나가야될지 모르는 터무니 없는 월세방이 아니라 집 같은 집으로 월세 없이, 아무리 비싸도 이사짐 센타를 써서, 시시한 행복을 위해 해야겠다.
이제 붙박이장과 부엌과 화장실, 냉장고 속의 짐만 싸면 끝이다. 힘내자. 새 집은 복층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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